이 글은 앙코르 커리어의 책 <브라보! 시니어라이프 – 행복한 시니어를 위한 최고의 직업 51가지(이마, 2015)>에서 옮겼습니다. 

앙코르 커리어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현역생활을 마친 사람들이 인생 2막을 어떻게 하면 ’일을 하면서 보람도 찾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찾는 과정에서 합심해 만든 비영리단체입니다. 은퇴 후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미국, 일본, 유럽 시니어들의 생생한 인생 2막 사례를 폭넓게 조사 연구해 책을 출간하였다고 합니다. 여기 소개된 사례들을 통해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가는 삶의 여정에도 도움과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따르릉!”

- 안녕하세요? 잰 커크 라이트입니다. 지금은 부재중이니 전하실 말씀이....

15개월 간격으로 부모님을 떠나보낸 잰은 부동산 중개소에 출퇴근하며 일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냈다. 고향 테네시 주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서 스무 해 동안 부모님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살았다.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니 바쁘다는 건 핑계였을 뿐 그동안 부모님께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에 후회스러웠다. 사람들을 만나도 즐겁지 않았고, 그저 앨범을 뒤적이며 옛 추억을 곱씹고 있을 때, 다니던 교회의 애킨스 목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잰! 잘 지내고 있지? 요즘 통 교회에도 안 나오던데, 이번 주말에는 시간 좀 내게. 나랑 가볼 데가 있으니. 잊지 말고 꼭...”

사람들을 함께 돕는 사람들의 모임

애킨스 목사의 손에 이끌려 잰이 찾아간 곳은 이스트사이드 인근의 황폐한 마을이었다. 집들이 하나같이 낡고 빛이 바랬으며, 담장이며 유리창이며 오랜 세월 손보지 못한 티가 역력했다. 애킨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낡아 보이는 집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세상에! 이런 집은 난생 처음 봐요...”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수많은 집을 다녀 봤지만, 잰은 정말이지 이런 집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지붕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도 있을 만큼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그곳만이 아니라 침실과 주방, 거실 어딜 봐도 멀쩡한 데가 없었다. 천장에서는 물이 샜고, 문짝은 달려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너덜거렸다. 거실 바닥도 군데군데 패여 있어 어두운 밤에 자칫 방심하면 걸려 넘어지기 십상일 것 같았다.

칠십 대로 보이는 집주인 엘사의 표정 없는 얼굴을 마주한 잰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마음을 굳혔다.

잰은 다음 주말에 바로 엘사의 집을 수리했다. 전문 수리업자를 불러 지붕을 수리하고, 문도 바닥도 손을 봤다. 환한 미소가 되살아 난 엘사의 얼굴 위로 얼마 전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그녀의 마음속 상실감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날의 방문은 잰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컬럼비아 이스트사이드 동네에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은 많지 않은 연금 소득만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따라서 집에 문제가 생겨도 수리를 할 여유가 없어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잰은 부동산 중개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들의 집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잰은 ‘사람들을 함께 돕는 사람들의 모임’(이햐 사함사)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사 13명을 선출하고, 규약을 만들고, 기금을 모금하고, 수리할 주택을 선정하는 기준을 만들고,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자원봉사자를 선발하는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함사 프로그램은 잰이 나니는 교회에서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다가, 그다음에는 다른 교회로, 지역의 기업체로, 정부기관으로 널리 알려졌다.

첫 번째 대상 주택을 수리하기 위해 지역의 한 은행에서 종잣돈으로 5500달러를 내놓았다.그렇게 기부 릴레이가 시작되어 총 9만 달러의 기금이 모였다. 결정적으로, 테네시 주 주택개발청에서 대응교부금으로 20만 달러를 내놓았다.

사함사는 육체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스스로 집을 수리할 형편이 되지 않는 주민들의 집 35채의 지붕을 교체하고, 깨어진 창과 부서진 문을 수리하고, 외부를 다시 페인트칠하고, 벽판지와 조경을 추가했다. 민간 기금과 정부 기금으로 자재를 구입하고, 지붕 공사와 배관 작업처럼 규모가 큰 수리는 전문 업자에게 돈을 주고 맡겼다.

그렇게 집수리가 끝나면, 소수의 자원봉사팀이 그 집을 맡아 현관에 벤치용 그네를 추가하거나, 화분과 화단을 가꾸거나, 우편함을 교체한다든지 하는 추가 손질을 했다.

동네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다

애니 하디슨(73세)은 1976년부터 방 2개짜리 단층집에서 살아왔다. 애니의 집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방 하나에서 빗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수리업자에게 800달러를 지불하고 수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가 샜다. 이제는 수리할 돈도 없고 더는 엄두가 나지 않아 애니는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사함사가 나섰다. 이번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전문 업체에 지붕 공사를 맡겼고, 더 이상 비가 새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중앙난방과 에어컨을 설치하고 단열처리를 추가했으며, 외장을 다시 페인트칠하고, 현관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고, 천장에 남아 있는 물 얼룩을 깨끗하게 지우고, 앞마당을 맵시 있게 단장했다.

그러한 노력은 단순히 집을 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 전체를 변화시켰다. 36년 전 애니가 이사 왔을 때, 이스트사이드는 벽돌이나 목재로 벽을 만든 단층집으로 이루어진 작지만 단정한 동네였다. 그러다 20년 전쯤 마약 밀매업자들이 하나둘 드나들더니 동네 자체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 사람들이 집을 버리고 떠났고, 빈터는 쓰레기로 넘쳐났다. 골목마다 전선에 운동화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약을 살 수 있는 곳임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사함사의 재건 노력으로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활기가 넘쳤다. 그것은 주민들이 동네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마약 밀매업자들에게 알리는 신호라고 잰은 믿는다.

2012년 10월 토요일 오후, 엘사의 집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잰이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미퇴직자협회(AARP: 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테네시 지부에서 수여하는 앤드러스 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소박한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뒤늦게 참석한 그녀를 포옹으로 환영하며 엘사가 말했다.

“우리 집 현관에 앉아 꽃을 돌보는 것만큼 세상에서 행복한 일도 없다는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고 있다우. 정말 고마워요.”

수상 소감을 말해 보라는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 잰이 수줍게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의 주거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평생을 두고 하고 싶을 만큼 내게도 행복한 일이 되었답니다.잰은 부상으로 받은 2500달러를 사함사 프로그램에 기부했다. 그녀는 사함사 프로그램을 이스트사이드 너머, 테네시 주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