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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사는 왜 고난을 당하나? -4장

도서출판 CLP(Christian Lifestyle Press)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운동 출판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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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4065-6679(문자 가능)/ Fax. 0303-0297-6679

 

CLP 게시판

 

작성자 김신정
작성일 2014-08-01 (금) 10:58
ㆍ추천: 0  ㆍ조회: 747      
IP: 198.xxx.138
김집사는 왜 고난을 당하나? -4장
이 책은 현재 교보문고 e-book으로 임시 출판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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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질문이나 의견 등은 독서토론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clmksj@gmail.com 로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고난을 받는 중에 당황스러워 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됨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 날에 여러분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받는다면그것은 도리어 복입니다이는 영광의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죽이거나 도적질하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힌 죄로 고난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난을 받았다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십시오.
(베드로전서 4 12-16)


4. 
하나님의 의도로 고난을 당한다.(베드로)

자네가 아직 하나님께서 고난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신다는데 대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 아주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어그 사람을 한번 만나 볼 텐가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데.”

“네.“ 김집사는 어떻게 되는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가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럼 가볼까?”

바울과 김집사는 바울의 집에서 100m쯤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그 집은 바울의 집 보다 조금 큰 집이었는데 장식이 없는 아주 심플한 외형의 집이었다집에 가까이 왔을 때 마당에서 장작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그는 바울보다 덩치가 좀 더 커 보였고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먼저 바울을 알아보고 “어이 바울 선생 어쩐 일인가?”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바울도 큰 소리로 “베드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김집사는 베드로라는 말에 놀랐으나 그 분위기에 묻혀 그냥 인사를 꾸벅 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김집사에 대해서 소개하고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베드로가 김집사에게 물었다.
“그래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에 때문에 힘들어 한다고내가 바울의 얘기와 연결해서 자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있어.
자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젠 줄 아나?”

김집사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혹시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예수님을 3번 부인했을 때가 아닌가요?”

“그래 맞았어나의 생애에 그 후에도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그 때가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인 고난의 시기라고 할 수 있어.

그때는 참 힘든 시기였어그리고 그 사건은 나를 아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어그 일 후에 예수님이 다시 찾아와서 다시 나를 회복시키셨지그리고 그 후로 나는 주님의 제자로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이 되었어.

그런데 그 후에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일들이 생각나면서 나를 괴롭혔어.
자네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예전에 실수 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드는 것 말이야.”

“예저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최근에는 사업에 실패했을 때 생각이 나면서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하는 후회와 함께 그때 일이 자꾸 생각이 나요.”

“그래그런 것 말이야한동안 그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상처가 다시 생각나곤 했어그런데 말이야시간이 꽤 흐른 후에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이상한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때 일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어.

자네도 그때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내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련의 사건에서 혹시 조금 이상한 면을 발견하지 못했나?”

“무슨 이상한 면이요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해 봤는데요어떤 이상한 것을 말하는지요?” 김집사는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어쩌면 당연하지당사자도 수십 년이 지나서 겨우 깨달은 것이고 또 특별한 영감으로 나에게만 말해주신 것일 수도 있으니……

자네 혹시 ‘예수님께서 왜 나에게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예고를 하셨는가?’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나이 질문이 이 사건을 새롭게 보게 하는 열쇠가 되었어.”

“특별히 그런 생각 해 본적이 없는데요?” 김집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들은 적은 없었다.

“그때 일을 다시 살펴보면예수님이 잡히기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릴 것과 모두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어늘 예수님이 하던 것처럼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지.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성격 급한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때 예수님께서 내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어그리고 예수님의 예언대로 나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되지문제의 발단은 성급하게 장담한 나에게 있지만 예수님도 뭔가 좀 이상하게 말씀하셨어어떻게 보면 내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통을 받은 것은 내가 공연한 장담을 하고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 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거야.

당시에 일들을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면내가 잘못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잘못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일단 내가 예수님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전혀 잘못된 말이 아니야결과적으로 보면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3번 부인했으니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야그리고 3번 부인은 했지만 나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어.

나는 예수님이 잡히던 밤에 다른 제자들은 도망하였지만 용감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어나는 예수님이 혼자 잡혀가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고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를 보려는 생각이 있었지기회가 있다면 예수님을 탈출시킬 생각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어.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 갔을 때 멀찍이 따라가던 나도 그곳까지 따라 들어갔어예수님이 심문을 받고 있는 동안 그 집 뜰에서 사람들이 불을 쬐고 있는데 같이 앉아 있었어그런데 그 중에 여종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내가 예수님과 같이 다니던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말했어그때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어그리고 자리를 옮겨 앞문까지 나아갔는데 또 다른 여종이 또 알아보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했어나는 또 부인하고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어그리고 시간이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사람들이 또 나를 알아보고 그 도당이라고 말했어나는 더 강력하게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그리고 그때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이 울고 나는 예수님이 나를 세 번 부인할 거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 통곡하게 되고 그때 이후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지.

그런데 잘 생각해 보게내가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고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척을 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다고 볼 여지는 없겠나?

“예 그렇군요그런 경우 ‘내가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말하고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정상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지금은 예수님의 상태를 살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봐야 할 상황이라 생각하면 단순히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보다는 잡히지 않고 처음 그곳까지 따라간 목적을 위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겠군요.” 김집사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보니 부인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나도 그때 정확하게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내가 당시에 자네가 말한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내가 대제사장 집까지 용기를 내어서 들어가 있는데여종이 처음 알아보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 부인하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어.

지금 나에게는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것이 중요했지 예수님의 제자임을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야만약 그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면 부인하지 않고 조용히 도망쳐서 나왔어도 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무장한 군인들도 아니었고 예수님의 제자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어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척하고 그곳에 남아 있으려고 한 것은 충분히 다른 사람들이나 나 스스로에게 이해될 수 있는 문제였어.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부인하고 또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까지도 좀 꺼림직하긴 했지만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죄책감이 크지 않았던 것 같아그랬기에 나는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었어그런데 내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고 난 뒤닭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어순간 나는 그 곳을 뛰쳐나와 통곡을 하게 돼.

내가 통곡한 것은 죄어오는 추궁에 겁을 내어서 나 살고자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심한 죄책감에서 통곡했던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는 정탐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나는 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겁쟁이다라는 생각으로 변화되는 결정적인 모티브가 닭이 우는 사건이었다는 거야.”

“예 그러네요” 김집사가 열심히 듣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래서 내가 하게 된 생각은 만약에 ‘내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천벌을 받을 겁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닭이 울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야그리고 아예 예수님이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시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만약 그랬다면나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그렇게 고통을 당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지 않겠나 하는 것이야.

내가 처음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에 나는 별문제가 없었어나름대로 예수님을 부인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또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충분히 정당성을 변호할 수도 있었어그리고 설사 겁이 나서 필요 이상으로 예수님을 부인했다 할지라도 나중에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을 추스를 여지가 있었을 거야.

그러나 닭이 울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지닭이 울고 난 뒤에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용서하지 못할 마음이 들고 큰 자괴감 속에 빠져 들고 심한 통곡을 하면서 좌절하고 무너져 버렸어.

그 일 이후의 나의 행적을 보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어나는 그 이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죽으시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어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도 없었지 그래서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같이 옛날처럼 고기 잡으러 갔어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세 번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회복시키시기 전까지 낙심하고 좌절 속에 살았어만약 예수님이 나를 회복시켜주지 않았다면 그 좌절과 고통의 시간과 파장은 아주 컸을 거야.

여기서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예수님께서 앞으로 벌어질 이 모든 일들과 내가 받을 상처를 아셨을 텐데 왜 ‘베드로야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이야.

예수님이 부인할 것이라고 말하고 내가 ‘절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화가 없었더라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정도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거야그런데 왜 예수님이 이런 일을 벌였는가 하는 거야.

내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지 않겠나모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아시는 예수님이기에 사랑하는 제자가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래 너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네가 비록 약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나를 부인할지라도 
네가 나를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 이해해.’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오히려 가장 크게 상처받고 고통 당하는 쪽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신 거야내가 지금 이 모든 일에 나의 책임과 문제는 없고 예수님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야물론 내가 일을 그렇게 만들어간 거지만모든 앞으로의 일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실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더 심하게 당하게 하는 쪽으로 이끌어가셨다는 거야도대체 왜?

예수님은 누구보다 나 베드로를 사랑했고또 내가 ‘나는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악한 것은 아니었어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렇게 했을까왜 예수님은 나에게 심한 상처를 주시려고 했을까특히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과정에서 제자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고 후에 하나님 나라 사역에 중심이 되어야 할 수제자 베드로를 왜 그렇게 무너뜨리셨는가 하는 거야왜 그랬을까?”

“글쎄요듣고 보니 이 사건에 아주 새로운 면이 있는 것 같군요그런데 정말 예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나는 이 질문에까지 도달한 뒤에 이 문제를 아주 오래 생각했어그리고 이 고난에 예수님은 특별한 의도를 갖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어그 의도는 내가 제기한 의문 속에서 찾을 수 있었어.

예수님은 내가 예수님을 이어서 하나님 나라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나의 질문은 그런 사람을 왜 넘어 뜨려야 했는가 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그런 중요한 사역을 해야 할 사람이기에 무너뜨려야 했다는 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야.

내가 말한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는 말 속에는 ‘나는 특별히 더 충직한 제자이다나는 더 예수님을 사랑한다나는 더 예수님을 잘 섬기고 끝까지 주를 위해서 살겠다.’ 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이었어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지.

사실 나는 객관적으로도 가장 충직한 예수님의 제자였어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실제 다른 제자들 보다 더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기고 또 더 주님을 사랑한 것이 나 베드로였어내가 그 위험한 대제사장 집까지 주님을 따라갔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잖아.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베드로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시기를 원하셨는데 자신 있게 예수님께 충성과 헌신을 맹세하고 자신하는 베드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 거야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베드로로 바꾸어야 했다는 거지.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아주 무참하게 넘어뜨렸어나의 마음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는 상황으로비참한 마음 속에 통곡할 수밖에 없는완전한 좌절 속에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는 사람으로이제는 헌신과 충성을 자신하고 다짐할 수 없을 정도로 베드로를 무너뜨리셨어.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가 되어야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셨던 것이지실제로 나는 그렇게 무너지고 난 뒤에 정말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제자로 거듭났어그리고 정말 힘 있게 주님의 일을 했어예수님 이후에 제자들을 이끌고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수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나를 통해서 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났어.

예수님의 계획은 정확하게 성공했어예수님은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을 기획하셔서 나를 무너뜨리셨던 것이지.

나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배우게 돼그 하나는자신이 충성되고 헌신할 수 있고 열심 있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나는 주님을 배반한 사람이라는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나는 또 주님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다른 사람은 주님을 다 시인해도 나는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약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군이 될 수 있다는 거야만약 이렇게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이 없었다면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해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야하나님은 고난을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고 고난을 계획하시고 고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군으로사역자로 만든다는 것이야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때때로 넘어뜨리셔심한 자괴감 속에 빠뜨리고, ‘나는 도저히 안 된다.’는 탄식이 나오는 상황으로 몰고 가시고고난과 고통으로 심한 통곡을 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시고완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셔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설 수 있기 때문이야이런 낮은 마음과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고 또 그 영광스러운 일들 속에 교만해지지 않기 때문이지이것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을 거야.내 말이 좀 이해가 되나?”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고난을 의도적으로 주실 수 있다는 것이군요그래서 제가 받는 고난도 죄나 징계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필요해서 주시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김집사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난이 죄에 대한 징벌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목적과 의도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베드로는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하던 것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김집사에게 마지막 당부를 한다.


    그래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고난처럼 김집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김집사에게 더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주시는 고난일 수도 있다는 거야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관심 한 것 같고 또 하나님께 버림 받은 느낌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어하나님의 아주 치밀한 계획과 아주 세밀한 인도하심이 그 고난 중에 있어그리고 하나님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하게 쓰시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김집사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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